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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발명

오르고 2024. 1. 28. 02:21


《고독의 발명》은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와 <기억의 서>라는 두 개의 중편 소설로 채워져 있다. 1983년에 출간되었으니 작가가 삼십대일 때, 초기에 쓴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에서는 이후 폴 오스터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미스터리한 플롯의 일단이 보이지만 <기억의 서>는 그것들과는 크게 다른 작품이다, (말이 하염없이 길어진) 파스칼 키냐르가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 “마지막 15년 동안 아버지는 집 안에 있는 것을 거의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가구를 새로 들이지도 않았고 자리를 바꾸지도 않았다. 벽지도 예전 그대로였고, 냄비와 프라이팬들의 위치도 바꾸지 않았고, 심지어는 어머니의 옷들마저도 버려지지 않았으며 다락방 벽장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집이 너무 크다 보니 그 안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책임이 면제된 모양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과거에 집착했거나 그 집을 박물관으로 보존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아버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를 지배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무관심이었고, 비록 여러 해 동안 그 집에서 계속 살아왔다 하더라도 마치 낯선 사람이 사는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pp.21~22) 오스터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 아들 오스터가 아버지 오스터를 떠올리며 쓴 글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해야 할 경제적인 도리를 져버리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라면 분명 가지고 있을 심정적인 도리를 한 적은 없다, 라고 단언할 수도 있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스터라는 성을 가져다 썼다면, 어쩌면 폴 오스터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트라우마가 투영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으나 알 수 없다. “서른넷에 결혼, 쉰둘에 이혼. 어떤 의미에서 그 결혼 생활은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지만, 실제로는 불과 며칠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결코 기혼남도 아니었고, 또 이혼남도 아니었다. 단지 어쩌다 막간극으로 결혼 생활을 한, 평생 독신 남자였다. 비록 아버지가 남편으로서의 외적인 의무를 피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아버지는 충실했고,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했고, 자기의 모든 책임을 떠맡았다) 그런 역할을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한마디로 아버지에게는 그런 일을 할 재능이 없었다.” (pp.36~37)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진 지 오래,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있고, 아버지는 그 손주에게도 애정을 과시한 적이 없다. 나에게 보이지 않은 모습은 나의 아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보여주는 일관된 모습이고, 어쩌면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오래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오래전에 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p.125) 「기억의 서」 『기억의 서에 대해 가능한 제명. <생각은 제멋대로 오고 제멋대로 간다. 그런 생각들을 붙잡아 두거나 지니고 있을 방도란 없다. 어떤 생각이 달아났다. 나는 그것을 적으려 애쓰고 있지만 그 대신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달아났다고 적는다.>(파스칼)』 (p.245) 소설은 쓰기라는 행위를 두고, 두 개의 가지로 쭉 뻗어나간다. 하나는 ‘기억의 서’이고, 다른 하나는 ‘우연의 특성에 관한 설명’이다. ‘기억의 서’는 제1권, 제2권의 식으로 진행되고, ‘우연의 특성에 관한 설명’은 첫 번째 설명, 두 번째 설명의 식으로 진행된다. ‘기억의 서’는 자신의 경험 혹은 추체험을 떠올려 기록하는 방식이다. ‘우연의 특성에 관한 설명’ 또한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우연을 적고 있다. “... A는 자기 방에 앉아 기억의 서를 쓰고 있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거기에 있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거기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을 없애야 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나라고 해야 하는 데도, A라고 한다. 왜냐하면 기억의 이야기는 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더 이상 거기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보는 이야기이다...” (pp.271~272) ‘기억의 서’와 ‘우연의 특성에 관한 설명’을 기록하는 사이사이 ‘기억’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우연의 특성에 관한 부연설명’을 하기도 한다. 각각에 실린 이야기들은 무작위적이다. 그 무작위 안에서 어떤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애를 써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유의미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다만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에 대한 언급이 많고, 기타 다른 저작물들의 인용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의 삶은 더 이상 현재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어떤 아이를 볼 때마다 그는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보일지를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또 늙은 사람을 볼 때면 그 사람이 어린아이였을 때는 어떻게 보였을 지를 상상하곤 했다.” (pp.153~155) <기억의 서>에 등장하는 그 혹은 A가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에 나오는 ‘나’는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점에서 그렇고, 해외에 머무는 동안 잠시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두 소설이 살짝 겹치는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하기도 하였다. 폴 오스터의 다른 소설들과 확연히 달라 눈에 띄기는 하지만 또 그래서 당황스럽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폴 오스터 Paul Aster / 황보석 역 / 고독의 발명 (The Invention of Solitude) / 열린책들 / 307쪽 / 2001 (1983)
고독의 발명 (1982)은 작가가 30대 초반에 쓴 초기작으로 그의 실험정신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와 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가족사에 대한 전기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작가의 자유로운 사색이 담긴 글이다.

작가는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맞으면서 그의 뇌리 속에 투명 인간 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서 붙들어 두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에서 그는 아버지의 행동들과 괴벽들을 회상하고 이런 기억의 파편과 인상들을 재구성한다.

두 번째 는 작가가 고독, 기억, 현재, 운명, 아버지, 아들, 글쓰기, 침묵 등에 대해 자유로이 사색한 글이다. 현대 프랑스 문학의 실험적인 경향이 느껴지는 이 글을 읽다보면 작가의 연상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일기를 훔쳐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
기억의 서